단어 테스트를 볼때면 항상 만점을 받으려 노력하고 숙제도 충실하게 해오는 Jack이라는 친구가 있다. 이전에 이 친구를 담당했던 선생님께 전해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아이 엄마가 처음에는 숙제도 많이 내주고 빡세게 공부 시켜달라고 했는데, 정작 숙제를 많이 내줬더니 왜 이렇게 숙제가 많냐며 컴플레인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인 말이 아이가 수업시간에 쓸데없는 말을 많이하고 못되게 말하는 경향이 있으니 너무 받아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는 '아 쉽지 않겠구나..'하며 솔직히 그 아이를 맡고싶지 않았다.
첫 수업을 하게 된 날, 첫 인사를 하고 수업을 전부 영어로 진행했다. 그 Jack이라는 친구 하나 때문에 어떤 농담도 받아주지 않을 생각으로 임했고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조용히 수업에 집중을 했다. 요주의 그 아이도 영어로 농담을 하기엔 아직 본인의 실력이 그리 높지 않다는걸 인정한 것인지 그 어떠한 잡담과 농담도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된 수업에 놀랐지만 긴장을 늦추진 않았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고 아이들과 라포가 형성되며 점점 사담이 늘어갔고 Jack도 점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날무렵 아이의 농담을 받아주지 않고 숙제를 다 해오라며 딱 잘라 말했더니 "원장님께 선생님 야근하라고 해야겠어요~"라며 농담조로 한마디 툭 던지며 문을 나섰다. 몇 달을 지켜보니, 이전 선생님 말처럼 Jack은 짓굳은 농담을 잘하고, 고슴도치 마냥 뾰족뾰족한 말을 내뱉는 친구가 맞았다. 그런데, 어느날 본인이 숙제를 착각하고 9과를 해야할 것을 8과를 해온 것이다. (8과를 해야하는 날에 잭이 책을 가져오지 않아 복사본으로 수업을 해서 교재는 비어있던 것) 숙제 체크를 하는데 연신 "쌤 저 망했어요. 8과를 해버렸어요."라고 하길래 "You didn't do your HW. YOU LAZY BOY" (숙제안해왔네 게으르군!) 라고 농담을 던졌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숙제를 안해왔다고 벌을 주거나 강한 말을 내뱉거나 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지~ 피곤했나보구나~ 요즘 많이 바쁘지~'하며 토닥거리며 숙제를 완수해야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려주고 스스로 하도록 만드는 편이다. 그날 Jack이 숙제를 해오지 않아 놀린것은 지금까지 쌓여온 그의 농담에 대한 나의 소심한 복수였다.
농담을 던지고 돌아서서 스크린에 페이지를 띄우고 정답을 타이핑을 하려던 순간, Jack의 입꼬리가 꾸물 거리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걸 발견했다. 본인이 숙제를 착각한것에 스스로 실망은 한 걸까? 아니면 항상 숙제를 해오지 않은 다른 학생들에게 놀림을 주거나 농담을 던지는 역할을 해오던 Jack이 본인이 숙제를 해오지 않아 놀림거리가 되는 것이 두려웠던 걸까? 아이의 감정이 궁금했지만 모른척 하며 "It's okay, Jack. You can do it now. Don't worry" 라고 말하며 다른 아이들은 Jack의 북받친 감정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바로 정답 체크하는 스크린 쪽으로 시선을 끌었다.
수업이 다 끝나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가끔 Jack이 감정이 상할만한 짓궂은 농담을 할 때 '쟤는 애 같지 않아...'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Jack은 그냥 어린 아이였다. 사소한 일에 감정이 요동치고 숙제를 해오지 않아 눈시울을 붉히는. 그 이후로 Jack이 하는 행동을 보니 그동안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느꼈다. Jack은 다른 친구가 영어 단어의 의미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스스로 나서서 설명해주고 도와주려 했고 수업을 하는 동안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다.
이전 선생님은 Jack이 하는 농담을 더 강하게 받아치며 저지했기에 아이가 더 뾰족한 날로 대응 했던게 아닐까. 나는 그 선생님의 말을 듣고 지레 겁을 먹고 Jack에 대한 강한 선입견을 스스로 만들었던 것 같다. 하루는 수업중에 'humble'이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순간 '겸손한'이라는 한국어 뜻이 떠오르지 않아서 잠깐 당황했던 날 Jack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쌤이면 그 정도는 알아야죠"하며 시비조로 놀렸고 나는 그에 "그러게 왜 기억이 안났지~ 도와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더니 Jack이 되게 머쓱해하며 "그럴수있죠"라고 대답했다.
'Thank you'는 마법의 언어다. 장난끼가 덕지덕지 붙은 Jack에게도 '고마워' 한마디면 상대에 대한 공격성을 다 내려놓고 온순한 양으로 만드는 마법의 말. 티칭을 시작하며 인간 본연을 많이 발견하는 중이다. 나 스스로도 몰랐던 나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며 내 말 한마디에 상대가 변하는 놀라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앞으로 더 다이나믹한 일들이 펼쳐질 것 같은데 약간의 두려움도 있지만 어떤일이 일어나도 트루먼쇼 마냥 '나는 지금 테스트 중이다'라는 마음으로 의연하게 대처할 예정이다. 개천절로 쉬는 날 카페에 나와 글을 쓰고 있는데 내일은 또 어떤 재밌는 일이 벌어질까 두근두근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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