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 무라세 다케시

Stacy K 2024. 10. 29. 10:37

 

개인적으로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데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이라는 일본인 작가가 쓴 휴먼 판타지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책 표지만으로도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뻔히 보였다. 사고로 한순간 운명을 다한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뭐 그런 내용이지 않을까...하며 잠시 동안 망설였다. 하지만 책 후기와 평점에 눈을 돌린 순간 줏대 없는 내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전자책을 모아둔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하며 평점에 좌지우지되는 나의 간사한 내면을 발견했지만 다수에게 인정받은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며 또 한 번 합리화 해본다. 

 


 

"저는 이번 사고로 사랑하는 약혼자를 잃었습니다. 당신들은 그 사람의 목숨만 앗아간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의 미래까지 빼앗아갔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빼앗긴 건 그 사람 혼자가 아닙니다. 제 미래에도 이제 더는 그가 없으니까요."

 

“네가 행복하게 사는 것. 구로랑 신나게 놀고, 돈가스 덮밥을 맛있게 먹으면서. 난 네가 평생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할머니가 돼서도. 평생, 영원히.”

 

"죽은 사람과 만날 순 있어도 그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않을뿐더러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아. 그걸 받아들일 수 있으면, 그때 이 열차에 올라타."

 

열차의 흔들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회전하던 바퀴가 ‘니시유이가하마 역’이라 쓰인 표지판 앞에 딱 맞게 멈춰 섰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손잡이를 잡았던 손을 떼고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후유, 하고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찰나, 찰카닥 소리와 함께 기관실 문이 열렸다. 안에서 남편이 나왔다. 당황한 나를 보며 남편이 부드럽게 말했다.
“내려.”

 


 

'마지막'이라는 단어 3음절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THE END'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내가 아무리 계속하고 싶어도 끝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마지막의 순간, 그리고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세상에 태어나 아직 '상실'에 대해 깊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마우스피스도 끼우지 않은 채 링 위에서 얻어터진 기분이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살면서 한 번쯤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만한 이야기들이 책에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책 안에 글자들을 읽을 뿐인데 실제로 내가 겪은 것 마냥 마음이 너무 아프다. 총 4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화 연인에게'와 '제2화 아버지에게'는 여느 드라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디테일하게 묘사된 상황에 빠져든다. 눈에 눈물이 고이고 코가 너무 막혀 잠깐 멈춰서 숨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읽어야 한다. 

 

제4화에 등장하는 열차 기관사 남편 그리고 남편을 잃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내 이야기는 마치 심장에 날카로운 칼날을 꽂아버리는 듯하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내가, 남편이란 걸 둬 본적도 없는데 부인을 바라보며 내뱉은 남편의 대사 "내려" 한마디가 눈물 버튼을 아주 세게 눌러버렸다. 한순간에 남편을 잃은 아내는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열차에 올라탔고 이를 본 남편은 자신 때문에 스스로 삶을 끝내려는 아내를 온 힘을 다해 막고 싶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슬픔이 배가 된 것 같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의 예견되지 않은 죽음을 맞닥뜨려야 했고 상실에 대한 슬픔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가는 중이라지만 그 누구도 죽음을 미리 염두해두지 않는다. 이에 무라세 다케시 작가는 독자들에게 주변을 돌아보고 그 관계를 더욱 소중히 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 만큼 큰 고통이 또 어디 있을까.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는 걸 보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나는 원래 무뚝뚝해', '시간이 없어'라는 핑계 집어치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표현하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대하자.

 

책 마지막 장을 끝냈을 때 가족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최근 내 상황을 배려하지 않는 부모님에게 화를 많이 냈다. 언제나 내 선택을 믿어주셨던 분들이 서른 셋이나 먹은 이 시점에 내 인생을 참견하기 시작하니 굉장히 당황스럽고 낯설었다. 나를 위해 해주는 말들임에도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는지 속상한 마음만 가득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들의 경험치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던 것 같다.

 

매번 잔소리 후에 대화의 마지막은 '우리가 너를 사랑해서 그런거야'로 마무리된다. 아무리 사랑의 형태가 다양하다지만 부모의 사랑을 내가 가늠하기엔 경험치가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사랑하기 때문에 참견을 한다는 말은 참 뜨거우면서 차가운 아이스크림 튀김 같다. 상온에 오랜 시간 두면 다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처럼 시간이 지나 내가 아기를 낳고 나면 이 말이 이해가 될까. 내가 부모가 되면 분명 날 이해하지 못하는 자녀와 많이 부딪치겠지. 아오 얼마나 내 맘 같지 않을까. 하다 하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자녀 걱정을 하게 만든 이 책이 참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