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33년 밖에 살지 않은 나에게 50이라는 숫자는 멀지만 가까운, 가까운 듯 먼, 언젠가 내가 꼭 거쳐야 하는 시간으로 'inevitable'(필수불가결) 단어를 떠오르게 만든다. 책 제목을 보며 짧은 순간, 오십이라는 숫자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 그리고 환희와 희열의 순간들이 펼쳐질까 미래의 스테시를 상상하게 되었다.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가 왠지 모를 안도감을 주며 나보다 오십이라는 숫자에 먼저 도달한 사람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부푼 기대감을 안고 책을 열었다.
"사람은 혼자 왔다가 혼자 살다가 혼자 떠나는 외로운 존재다. 그런 존재가 경험하는 외로움은 필연적이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외로움은 괴로움이 될 수도, 즐거움이나 충만함이 될 수도 있다."
"깊이 되돌아보는 성찰과 더 나은 선택으로 불행한 어제를 행복한 오늘로 바꿀 수 있다. 불행이 불행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불행을 바라보는 나의 습관이 불행을 가져온다. 중년의 행복은 내가 하는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선택하느냐가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선한 마음으로 선택하면 뭘 택해도 좋고, 악한 마음으로 선택하면 뭘 선택해도 고통스러운 일이 생긴다는 이치다."
"관계를 잘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잘 지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속의 나와 내가 사이좋게 지낸다는 의미다."
"우리 인생도 각자의 꽃을 피우는 시간이 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원하는 꽃을 피운다. 사람도 봄꽃처럼 누구나 자신만의 꽃이 있다. 그리고 그 꽃을 피우는 시기가 따로 있다. 언제 꽃을 피우는가는 자신도 알 수 없다.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그때가 오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방황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라는 말은 나이가 들어가며 더 격하게 공감이 되는 말이다. 6년간 해외 여기저기를 홀로 다니며 별별일을 다 겪었는데, 결국은 내 마음가짐 따라 모든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뉴질랜드, 호주, 영국처럼 잘나가는 영어권 국가에서 이름모를 국가 출신 동양인,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건 쉽지 않다. 어딜가든 환대보단 홀대, 무관심에 가깝고 그 어떠한 차별을 겪어도 그러려니 해야한다. 하루는 펍에서 친구랑 맥주를 마시다가 참아왔던 울분이 터진건지, 뭐가 그렇게 억울했던건지 '이 땅이 너무 싫어!'하며 펑펑 운 적도 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안에 냉소와 염세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일이 틀어지거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면, '그래, 어차피 해도 안될 텐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등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로 쉽게 변해버렸다. 인종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때는 내 자리를 지키기 바빴고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서른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정이 넘치는 한국 사회는 상처받은 내 마음에 마데카솔을 발라준 것 같다.
상처에 새 살이 돋고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내 마음의 맷집도 강해졌다. 좋지 않은 상황이 왔을 때, 이전의 시니컬한 태도에서 벗어나 '그럴 수 있지', '앞으로 더 잘 되려고 그러나 보다' 마인드로 바뀌었다. 이렇게 하니, 일단 내 마음이 편했다. 나에게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 오더라도 '더 열심히 하라는 거구나', '좋은 날이 곧 오려나보다' 하며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같은 상황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내 관점이 변하고 행동이 바뀌며 결국 좋은 결과가 따라 오는 것이다. 매사에 공격적이고 살벌한 눈빛으로 무장했던 내가 온화한 미소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변한 걸 보면 단군신화에서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된 곰이 내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에서 도민준 대사 중 "인생은 인간이 철이 들만큼 그리 길지 않아"라고 한다. 뉴질랜드에서 보증금 사기도 당해보고 영국에서 범죄에 휘말려 경찰서도 가보고 홍콩에서 눈 떠보니 병원이었던 아찔한 경험도 있다. '우주에서 보면 난 먼지에 불과한데 먼지치곤 고생이 너무 많다' 싶은 일들을 너무 많이 겪었다. 이제는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다 이겨낼 수 있어!' 라며 '이정도 쯤이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겪을 때나 이기적이 사람들을 볼 때면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화 비슷한 어떤 게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도민준의 말 처럼 이번 생에 철들긴 어려울 것 같다.
이번 생에 철이 들긴 힘들 것 같지만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童心(동심)과 純粹(순수)은 잃지 말아야겠다. 삶은 파도와 같아서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 치더라도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해 진다. 매일이 기쁘고 행복하기만 하다면 우리는 행복의 소중함을 모를 것이다. 수많은 고민들로 휩싸여 베개에 머리를 대고도 잠 못 들던 때가 있었기에 아무 걱정 없이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 매진 되고 없을 줄 알았던 르뱅쿠키까지 있어서 행복이 더블이 되었다. 완전 럭키비키잖아^0^
당신이 세상을 보고 웃으면 세상도 당신을 보고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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